| ... | ... | |
|---|
| 127 | 127 | |
|---|
| 128 | 128 | 또한 83년 3월부터 마베라군은 동자오그란트, 수미나이, 노르트란트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광할한 길이의 참호선을 건설했다. 마침 3월 3일부터는 2월에 끝났던 장마가 다시 찾아와 전선 전역이 진흙으로 뒤덮혔다. 3주간 이어진 장마로 땅이 질척거려 땅끄들이 진격을 못하니 한랜드군의 전격전 전술이 돈좌, 공세가 막을 내리고 전선이 고착화되었다. 당황한 한랜드군은 전쟁 전에 연구해뒀던 인공강우 프로젝트 '나푸사 작전'을 실행, 600만톤이 넘는 HINA 분무액[* 웨스타시아 연방 기술개발부 소속 R.J. 라인하르트 박사가 개발해낸 물건으로, 본디 수증기 결집용 원소로 아이오딘화'''은'''을 뿌려야 했기에 비용이 천문학적이던 인공강우 기술을 기존의 7분의 1 비용으로 쓸수있게 해준 용액이다. ]을 전선에 뿌려 공기중 수증기를 한방에 응결, 3~4일만에 장마를 끝내려 했지만 계산 실수와 마베라 정보부 & 루이나 MIA의 분무액 생산라인 사보타쥬[* HINA 분무액의 생산은 스타인먼 화학이 담당했는데, 본토의 공장들은 독가스 만드느라 이미 바빠서 주로 점령지의 로동력을 이용해 분무액을 생산했던게 화근이었다. ]가 겹쳐 뿌려진 불량용액이 역효과를 유발. 예보대로면 3월 중순에 그칠 예정이던 장마가 7월까지 연장되버리는 참사가 발생했다. 굳은 날씨때문에 그렇게 한달내내 내린 장마로 양측의 기갑 전력들이 대부분 봉쇄되어버리면서 남은건 보병부대 뿐이었다. |
|---|
| 129 | 129 | |
|---|
| 130 | | 그렇게 솔로몬, 미스라타, 아크로마 전투에서 1차대전 이후 봉인되어있었던 참호전이 반백년의 세월을 넘어 부활하고야 말았다. 웨스타시아군은 여전히 미미하게 공세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3달이 넘는 기간동안 전선에 변화는 거의 없었고, 대부분 하루에 수킬로미터 진격에 그쳤으며 가끔은 몇미터씩 진격한 때도 있었다. 이런 질척이는 전황은 솔로몬 요새 공방전에서 정점을 찍었는데, 도시 하나 먹는것에 양군 총합 '''8만명'''의 희생자가 발생할 정도였다. 이렇듯 양측의 손해가 극심했기에, 브라가 장군은 쏟아지는 반전 여론에 한동안 경질당할뻔 했다. |
|---|
| 130 | 그렇게 솔로몬, 미스라타, 아크로마 전투에서 1차대전 이후 봉인되어있었던 참호전이 반백년의 세월을 넘어 부활하고야 말았다. 웨스타시아군은 여전히 미미하게 공세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3달이 넘는 기간동안 전선에 변화는 거의 없었고, 대부분 하루에 수킬로미터 진격에 그쳤으며 가끔은 몇미터씩 진격했던 때도 있었다. 이런 질척이는 전황은 솔로몬 공방전에서 정점을 찍었는데, 도시 하나 먹는것에 양군 총합 '''8만명'''의 희생자가 발생할 정도였다. 이렇듯 양측의 손해가 극심했기에, 브라가 장군은 쏟아지는 반전 여론에 한동안 경질당할뻔 했다. |
|---|
| 131 | 131 | |
|---|
| 132 | 132 | === "수면위의 모든것은 웨스타시아의 적" === |
|---|
| 133 | 133 | 이제 난감한 쪽은 웨스타시아였다. 당초의 7일 전쟁 계획은 물건너간 상황에서, 병사와 물자들은 계속 갈려나가고 있는데 장마로 더이상의 진격도 불가했다. 현 시점에서 가능한 수는 그저 7월에 장마가 끝날 때까지 버티다 땅이 건조해졌을때 다시 진격하는 것밖에 없었는데 문제는 마베라 측은 곡창지대를 잃었음에도 NLTO에서 들어오는 원조가 워낙 막대했기에 오랫동안 버틸수 있었지만, 웨스타시아 측은 기껏얻은 곡창지대를 관리하는 것만으로도 막대한 지출을 해야했다는 것이었다. |
|---|
| ... | ... | |
|---|
| 147 | 147 | |
|---|
| 148 | 148 | RMN 카푸초(Capuccio)함은 마베라 해군(Maberra Royal Navy, RMN) 소속의 순양함으로, 4월 24일 마베라 국영방송에서 진행되던 선전 생방송 도중 웨스타시아 해군 소속 잠수함의 어뢰 공격을 받아 격침되었다. 해당 방송은 마베라 전역에 생중계되고 있었으며, 어뢰 피격과 함정 침몰 장면이 실시간으로 송출되면서 국민적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마베라 국내에서는 전쟁 지속에 대한 회의론과 항복 요구 여론이 급속도로 확산되었다. 해당 생방송이 송출된 이후로 마베라 해군의 활동이 급격히 감소하였고[* 당시 마베라 해군의 두려움은 상당했는데, 당시 음탐부사관이 과도한 스트레스로인한 정신병으로 의가사 전역할 정도였고, 근해에서 조금이라도 이상한 소리가.들리며누함대 전체가 꽁지가빠져라 도망쳤다, 후에는 이런 사실을 인지한 웨스타시아 해군이 해당 소음을 직접 녹음해서 소형 수중드론에 매달아서 마베라 해군을 겁주고 다녔다.], 이에 따라 웨스타시아 해군은 의외로 순조롭게 마베라 근해의 재해권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5월 초부터 마베라해는 완전한 죽은 자들의 땅이 되었다. |
|---|
| 149 | 149 | |
|---|
| 150 | | 봉쇄의 효과는 굉장했다. 서방의 원조만으로 실상 버티고 있던 마베라는 봉쇄시작 몇주만에 빠르게 무너졌다. 당시 마베라가 버티고있던 동부주들은 대부분이 사막 지대 내지 더운 사바나 기후라 도저히 농사를 지을땅이 안되었다. |
|---|
| 150 | 봉쇄의 효과는 굉장했다! 서방의 원조만으로 실상 버티고 있던 마베라는 봉쇄시작 몇주만에 빠르게 무너져내렸다. 당시 마베라가 버티고있던 동부주들은 대부분이 더운 사바나 기후 + 장마로 햇빛이 안듬 크리로 도저히 농사를 지을땅이 안되었던데다, 대부분의 비축미들은 서부에 있었던 탓에 마베라는 빠르게 아사해가기 시작했다. 거리에 넘쳐나는 굶어죽은 시체들과 악취로 인해 반전 여론은 갈수록 심해졌다. |
|---|
| 151 | 151 | |
|---|
| 152 | | === 체르드의 참전 === |
|---|
| 153 | 153 | === 딮스마르크 추격전: 봉쇄가 뚫리다 === |
|---|
| 154 | 154 | ==== 벵가지 상륙 ==== |
|---|
| 152 | === 주변국들의 참전 === |
|---|
| 153 | 155 | === 딮스마르크 추격전: 봉쇄가 뚫리다 === |
|---|
| 156 | 자세한건 [[딮스마르크 추격전]]문서를 참고. |
|---|
| 154 | 157 | ==== 벵가지 상륙 ==== |
|---|
| 158 | 자세한건 [[벵가지 상륙전]]문서를 참고. |
|---|
| 155 | 159 | ==== 대공세 ==== |
|---|
| 156 | 160 | ==== 번외: 라이넬 항 탈출 ==== |
|---|
| 161 | 자세한건 [[라이넬 항 탈출]]문서를 참고. |
|---|
| 157 | 162 | === 발악: 은색작전 === |
|---|
| 158 | 163 | ==== 칼펜슈타인 공중전, 루프트바페의 괴멸 ==== |
|---|
| 159 | 164 | ==== 토브룩의 참화 ==== |
|---|
| ... | ... | |
|---|